대저 생태 공원 모습입니다
마요님 요리 꼭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비싼음식 (고급음식)은 미국 올때 (1958) 까지 먹어보지를 못 했습니다.
제일 많이 밖에서 먹은 음식이 길가에서 사먹던 우동 하고 집안에가서 먹은 것은 쩌장면 이였습니다.
길 모퉁이에 손수래에 미군 천막으로 지붕을 씌운 우동가게가 있었습니다. 연탄불 위에 큰 물주전자가 식당 설비의 전부였고
제가 들리던 곳은 의자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포장마차의 원조쯤 됄가요?
아침에 받아 놓고 손님이오면 "아지노모또"소금 물에 일인분 국수를 담고 고추가루 약간 뿌려 "다꾸왕"
두조가리 언저 줍니다.
추운 겨울에는 그 것이 추위도 녹여주고 소금물 맛이지만 그맛이 제머리에 정식 우동 맛으로 등록 되였습니다.
그후에 고급(?) 음식점에서 우동을 시켜도 옛날 맛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 당연하지만---
저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그리던 곳이 김해였습니다.
유행가 가사와 같이 이제는 찾아갈곳은 못되더라 내고향* 의 고장이 됐습니다.
지금은 저의 평생 원수 김일성 찬양/추종자들의 소굴이 됐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세대 (두살 아래) 이고 같은 진주 강씨인 남인수 (강문수) 의 노래 구절입니다. .